트럭과 이세계와 전생과 가정의 상관관계 및 가치
이에 대해 제 기나긴 헛소리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불편하시면 그런거 아닌데!라고 해주세요.
TL;DR
- 리셋 버튼이 된 트럭: 과거의 교통사고가 성장을 위한
시련이었다면, 현대의 트럭은 지친 현실을 가장 효율적으로 끝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돕는리셋 버튼입니다. - 노력 가성비와 치트 능력: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저성장 사회에서, 고통스러운 수련 과정(전문성)을 생략하고 즉각적인 보상을 얻으려는
딸깍심리가 치트 능력 서사로 나타납니다. - 관계 청산과 안식의 재정의: 집과 가정을 구속이자 감시(부모)로 느끼는 세대에게, 이세계 전생은 기존의 낡은 성공 공식과 인간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얻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적 안식입니다.
트럭은 언제부터 나타난 걸까?
밍키
이러한 이세계로 보내주는 트럭의 시작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씬이 있어 가져왔습니다. 요술공주 밍키는 1982년과 1991년에 나온 애니메이션으로 페나리나사의 공주인 밍키모모가 지구에 파견되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되찾아 주는 내용입니다. 마법소녀 물에서 클래식에 해당하는 작품인 셈이죠. 이 작품은 마지막화라고 알려진 46화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방영됩니다.
바로 밍키가 마법의 힘을 잃은 후, 도로로 나간 공을 주으러 도로에 들어간 사이, 과속하는 장난감 트럭을 실은 트럭에 치여 죽는 장면이 연출된 것입니다. 당연히 실제로 죽은 거고 추후 인간의 아이로 환생하게 됩니다만, 이는 당시 아동용 애니 치고는 충격적인 장면이었죠. 뒷 이야기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해당 블로그를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는 비록 이세계로 가는 트럭은 아니지만, 트럭으로 인한 교통 사고와 그로 인해 다른 위치와 신분으로 환생한다는 플롯을 의도치않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과 달리 유쾌한 플롯은 아니지만, 아마 이 장면이 적지 않은 분들의 뇌리에 남게 되었겠죠.
유유백서
1화에서 주인공인 우라메시 유스케가 자동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고 대신 사망합니다! 심지어 구한 아이는 차에 치이지만 기적적으로 찰과상 하나 없이 무사할 운명이었습니다! 심지어 저승사자 격되는 캐릭터인 보단은 유스케에게 개죽음이라고 인증도 합니다!
하지만 당연히 아이의 운명이 달랐다면, 유스케의 운명도 다를 겁니다. 유스케 또한 해당 사건으로 원래 수명보다 빨리 죽게 되었고, 비록 영혼 상태지만 현세에 남아 탐정이 되어 부활하기 위한 시련을 받게 됩니다. 비록 트럭에 치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주인공의 삶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되는 건 늘 먹던 맛이죠.
무직전생
이제부터 늘 먹던 맛이 시작됩니다. 소설가가 되자에 등장한 무직전생은 하… 히키코모리인 주인공의 시점으로 시작됩니다. 세상의 모든 걸 등지고 지내면 그는 부모님의 장례식에도 방 밖을 나가지 못해 참석하지 못 합니다. 결국 그에 화가난 친척들이 주인공을 집밖으로 내쫓습니다. 그리고 정처없이 방황하던 주인공은 트럭에 치일 뻔한 학생들을 밀쳐내고 대신 치입니다. 당연히 그는 사망하게 되고, 사후 루데우스로 환생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아마 이세계 전송 트럭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된 시점이 이 시점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후 다양한 곳에서 패러디되고, 좀비 랜드 사가나 코노스바같은 작품에서 클리셰 비틀기까지 이루어지게 됩니다. 아마 트럭이 이상하게 느껴지지않고 자주 나오게 된 이유로는 압도적인 질량으로 확실하게 사살이 가능해서 + 현대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며 + 덩치도 커서 비주얼적으로 모자람이 없어서로 같습니다.
트럭 외엔?
트럭 외에는 평범하게 마법진을 이용해서 소환한다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납치된다거나, 우물을 통해 전이된다거나, 변기에 같이 내려간다거나, 갑자기 걷다가 사라진다거나, 칼에 찔린다거나, 책장에 깔려 죽는다거나, 노동력을 착취당하다 과로로 죽는다거나, 착각해서 심장마비로 죽는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중, 무직전생 전후에 대해 특징적 차이를 아시겠나요? 보통 죽기보다 나 자체가 사라진다거나 하는 경우가 트럭 이전이고, 트럭과 동시기거나 그 후의 경우에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에 대해 물론 무직전생 이후에도 단순 전이나 소환되는 경우가 많이 나오게 됩니다. 당장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만 하더라도 주인공은 죽어서 전생했지만, 히나타는 전이했죠. 짐승의 길 또한 레슬링 경기 중 전이되었구요.
그 시기의 전생
진짜 그 비슷한 시기의 전생물 몇개
나이츠 & 매직: 엄청난 개발자이자 로봇 오타쿠였던 주인공이 교통 사고로 죽은 뒤, 실루엣 나이트라는 거대 로봇과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에 전생하게 됩니다.유녀전기: 매우 빡센 엘리트 샐러리맨이 회사에서 실적이 떨어지는 직원에게 해고 통보를 한 후, 그 직원에게 전철역에서 떠밀려 전철에 치여 죽게 됩니다. 그 후, 신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놈 평가를 받고 한창 전쟁 중이던 이세계에 가장 연약하고 취약한 고아 소녀인 타냐로 전생하게 됩니다.정령환상기: 버스 사고로 죽은 대학생이 이세계 슬럼가의 고아 소년의 안에서 기억을 되찾으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무직전생과 이 작품들은 공교롭게도 공통적으로 전생하며 특이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녀전기는 저주에 가까운 것이지만 마법 재능을 타고 나게 신이 의도했으며, 무직전생의 루데우스와 정령환상기의 리오는 기본적으로 방대한 마력량을 타고 났으며 리오는 아이시아라는 최상위 정령과 함께 살고 있었죠. 그리고 나이츠 & 매직의 에르는 어떠한 능력이라기엔 애매하지만 전생(현대)의 지식으로 이세계의 법칙을 쉽게 득도했죠. 전생의 지식의 활용은 루데우스나 리오, 타냐 또한 공통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이건 무직전생이 시작이 아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치트 급 능력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해졌습니다. 비교적 치트가 덜 돋보이는 슬라임을 잡으면서 300년, 모르는 사이에 레벨MAX가 되었습니다마저 무려 불로불사라는 엄청난 치트가 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죠. 책벌레의 하극상도 제대로된 성장물이지만, 현대 지식으로 인한 치트 효과와 오랜 지병이 사실 축복이라는 반전 때문에 결국 치트 급 능력이 있었던 거죠.
대체 왜 치트 급 능력이 필요해졌지?
유유백서나 요술공주 밍키같은 경우를 보면 트럭 뿐 아니라 교통사고는 비극입니다. 그로 인해 새로운 삶이나 시련이 시작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슬픈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혹은 과거에는 이세계로 전이되었다면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서 일상과 가정을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는 마치 리셋 버튼같은 느낌으로 쓰였습니다. 무직전생에서는 기존의 쓰레기같은 인생을 끝내주었던 불가항력적인 존재이자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다시 시작하기 위한 리셋 버튼처럼 사용되었죠. 루데우스는 전생을 그리워하지 않고, 오히려 트라우마로 작용합니다. 돌아갈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죠.
그런 상황에서 만약 주인공이 아무 치트 능력이 없다면, 이세계에 적응하고 노력으로 1인분을 할 수 있게 되는 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 산재할 불확실성도 해소해야합니다. 하지만 치트가 있으면 스토리 전개에 있어 상당히 할게 줄어들죠. 그리고 지친 현대인을 대변한 부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치열하게 노력하고 살다 죽어서 전생했는데, 또 다시 치열하게 살아달라고?
아마 있을 수 없는 일일겁니다. 그렇기에 마법을 줄 수라도 없다면, 상대적으로 문명 수준이 떨어지는 곳으로 보내서 현대 지식을 십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죠. 반면에 그 이전 작품들에선 이세계 장르만이 아니라도 노력과 성장을 띄는 작품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차이가 사회상을 반영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이세계에 종속적인 치트 능력 외에는 현대 지식과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케이스가 꽤 있습니다. 마도구사 달리아는 고개 숙이지 않아는 가전 제품 만들고 있고, 현실주의 용사의 왕국 재건기는 군주론을 비롯한 현대 학문을 적극 사용하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스킬로 이세계 방랑 밥은 요리 기술은 물론 한 술 더 떠서 온라인 쇼핑몰을 마법으로 쓰고 있죠.
현대 사회에서 공학적 지식을 어느정도 아는 수준, 요리를 일반인치고 잘 하는 정도, 어느정도 지식을 얕고 넓게 알고 있는 정도, 조금의 전문성은 있지만 이정도는 현대 사회에서 엄청난 경쟁력을 가지거나 특별한 취급을 바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세계에 가면 얘기가 달라지죠. 이세계의 문명 수준이 떨어질 수록, 전생자의 상식이 그들에게 큰 지혜가 됩니다.
또한 현대 사회는 전문 지식이 있다하더라도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세계에선 그렇지 않죠. 흔치 않는 전생자이고, 치트 능력이 있다면 나 자신은 대체할 수 없는 유니크한 능력자가 됩니다. 이런 특성들이 점점 현대 사회에서 한낱 부품으로서 자신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달콤한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성의 죽음
진짜 전문성을 가지고 이세계에 가면 어떻게 될까요? 설명하기 힘들고, 작품이 노잼이 될 확률이 높고, 지루하고 현학적입니다.

어쩌면 이미 많이 한 공부를 또 하고 싶지 않아서거나, AI 열풍과도 맞닿아 있는 딸깍과 해줘 심리가 포함된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마법 한줄 딸깍으로 해주는 시대가 더 쉽고 편리할 테니까요.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과거에는 어땠을까
당연하게도 어떠한 시기에 나오는 창작물은 그 시대상을 담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90년대 작품들의 일반적인 흐름은 어땠을까요?
- 주로 전생이 아닌 전이로 이루어집니다. 죽어서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몸 그대로 이세계로 이동합니다. 나라는 정체성과 더불어 원래 살던 시대의 정체성 또한 같이 옮겨 갑니다.
- 목적이 주로 원래 세계로의 복귀입니다. 이세계는 위험이 도사리는 공간이고, 외지입니다.
- 주인공이
구세주나무녀등으로 추대 받는 경우가 있지만, 그 자리는 권력이 주어지기 보다 책임과 짐으로 주어집니다.
혹은 유유백서처럼 죽음이 포함되면 새로운 시련이 시작되죠.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힘을 키워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회귀합니다.
성장 vs 탈출
과거에는 시련을 통한 주인공의 성장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도 많은 독자들이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처음부터 남들은 범접할 수 없는 치트 능력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최소한의 양심으로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나 개방할 수 있는 지는 바뀌는 것같습니다만, 주인공이 노력을 안하는 경우는 없더라구요. 나 혼자만 레벨업에서는 노력하게 만들기도 하구요.
- 1980~1990년대, 거품 경제의 잔향
- 일본에서 버블 경제가 붕괴했지만, 여전히 사회는 “노력하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노력 했을 거구요.
- 또한 각 사회 구성원들과 작품의 주인공들은 돌아가야 할 따뜻한 가족과 일상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더더욱 이세계는 어쩌면 시련에 불과 했을 겁니다.
- 2010년대 이후, 저성장 시대와 무력감의 반동
- “잃어버린 20년"이 장기화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고, 더 나은 생활을 만들 수 없는 사토리 세대가 떠올랐습니다. 노력을 배신당한 세대에게 더 이상의 노력과 성장은 피곤한 요구일 것입니다. 마치 지금 한국처럼요.
- 그래서 현대 사회는 트럭에 치여서라도 탈출하고 싶은 곳이 된 것 아닐까요? 그래서 시대상의 정체성은 버리고,
나라는 정체성만 그대로 이세계에 전생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 받지 못한 보상에 대한 결핍에 대해 내가 손에 잡을 수 있는 수단과 이세계에서 가질 수 있는 치트와 보정으로 해소하는 것일 수 있다고도 봅니다.
즉, 과거와 현재에 대해 사회상이 이세계물에 크게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구분 | 과거 (성장과 귀환) | 현재 (리셋과 안식) |
|---|---|---|
| 이동 기제 | 신비로운 전이 (차원 이동) | 불가항력적 사고 (트럭/사망) |
| 삶의 목표 | 원래 세계로의 귀환 (Home) | 현지에서의 정착 및 쾌락 |
| 성공 방정식 | 고통스러운 수련과 성장 | 타고난 치트와 현대 지식 |
| 가족의 의미 | 돌아가야 할 그리움의 대상 | 새로 구축하거나 회피할 대상 |
| 시대적 배경 | 노력하면 보상받는 우상향 사회 | 계층 이동이 단절된 저성장 사회 |
반면에 뒤에서 더 얘기하겠지만, 무직전생과 책벌레의 하극상은 그 궤를 조금 달리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가정 혹은 고향, Home
과거와 현재의 이세계에 대한 인식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홈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전이되었을 경우에는 돌아갈 곳이 있기에 굳이 이세계를 홈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전생되었을 경우엔 그 얘기가 다릅니다. 혹은 이세계에 돌아갈 수 없는 상태로 전이되는 경우도 포함해서요.
대부분 이세계에서 살아야 하기에 이세계의 것을 배우고 익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가정과 고향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작품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체로 현지인들과 깊은 유대감을 맺기 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편의를 누리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반면, 무직전생과 책벌레의 하극상은 그런 면에서 확실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둘은 현지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과 지키고 싶은 가정 혹은 고향이 있죠.
여기에선 어떤 키워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책임을 꼽을 수 있을 것같습니다.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 받지 못 하는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저는 책임감의 상실을 꼽을 것같아요. 그들에게 이세계는 두번째 인생이라기보다 단순 무한한 자유가 보장되는 샌드박스 게임과 유사하다고 보이거든요.
이런 면에서 홈에 대한 묘사가 부족한 건, 구속에 대한 거부감이라고도 보입니다. 집을 짓고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형태의 구속입니다. 대신 언제든 떠날 수 있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으며, 압도적인 치트 능력으로 대부분의 귀찮은 절차를 생략하는 기저가 깔려 있다고도 보구요. 물론 작품 진행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또 다른 형태의 희생
또한 이 것도 효율성을 추구하다보니 발생한 결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여러 귀찮은 배경 스토리와 개연성, 의도 등을 생략하고 불가항력적인 힘 한방에 주인공을 죽여버리고 이세계로 보내는 트럭과 같은 장치
- 굳이 전문가가 되는 과정을 그리거나 재능이나 힘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하거나, 사소한 트리거로 모든 보상을 얻는 압도적인 가성비
이 두가지에 맞물려 가정과 고향에 대한 가치도 격하된 것으로 느껴집니다.
시대상 반영
다만 이건 작품의 질적 저하나 독자의 수준 저하같은 저열한 평가를 내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창작물이라 할지라도 결국 시대상을 어느정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제 관점입니다. 비교적 과거와 현재에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큰 변화를 겪은 것 또한 사실이고, 두 나라는 놀랍도록 유사한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저희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집이란 무엇인가요?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에 주거가 포함되는 만큼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출, 세금, 유지비, 지역 고정 등은 꽤나 강력한 속박이 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젊은 세대는 보통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거나 해도 평생 일해야 합니다. 천운이 떨어지지 않는 한이요.
이에 당연히 집의 연장선인 가정을 꾸리는 것, 평생 한 곳에 묶여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은 어느 쪽에도 매력적이지 않을 겁니다. 여기에 더해 아이템 박스를 통해 고전적 창고의 역할을 대신하는, 어쩌면 극도의 책임의 미니멀리즘이자 소유의 맥시멀리즘을 보여주기도 하죠.
끝으로
이에 대해 저는 여러가지가 겹친 장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노력의 가성비가 급락한 사회: “노력해도 바뀌는 건 없다"는 절망적인 사회일 수록,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는 위로가 될 것입니다.
-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사회: 과정(노력)의 가치가 사라지고, 결과가 정당화하는 세태에 당연히 수련 과정은 필요없습니다. 바로, 혹은 조금의 노력으로 말도 안되는 능력을 얻는 설정이 카타르시스를 주기 좋죠.
또한 기성 세대의 불안정한 가정의 모습에서 자녀 세대는 적지 않은 걸 배웠을 겁니다. 사회적 모습이나 경제 상황이 등을 떠민 것도 있겠지만, 사토리 세대나 N포 세대, 탕핑족으로 대변되는 희망을 포기함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모습이 동아시아 삼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건 그들이 공유하는 사회상에 대한 공통된 문제가 있다는 것이겠죠.
저는 이렇게 봅니다.
- 과거 세대엔 비교적 도전이 먹혔습니다. 현재는 도전보단 어차피 타고난 환경이 그대로 대물림된다고 보는 편입니다.
- 소수는 내 집 마련과 자녀 교육을 위해 평생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을 보며 그러한 삶에 대한 회의를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 또한 적지 않은 부모가 자기 세대의 낡은 성공 공식,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취직해서 결혼하고, 집을 사서 사는 것을 강요하고,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하지만 자녀 세대에 와서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도 취직이 안되고, 결혼이 어렵고, 일해서 집을 사는 건 불가능하니 반동이 크게 생겼을 겁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부모는 더 이상 안식처인 보호자가 아닌, 성적과 취업을 체크하는 감시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결국 이세계 전생물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이동을 넘어, 이러한 숨 막히는 관계와 기대로부터 완전히 단절되고 싶은 절박함의 투영일지도 모릅니다.
- 그리고
무직전생이후지만 비트코인과 같은 수단을 통한 일확천금의 기회에 대한 환상도 어느정도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사토리 세대, N포 세대, 탕핑족 모두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투자 수단을 통한 계층 사다리의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마치 치트 능력처럼요. - 경쟁이 치열하거나 했던 것도 크다고 봅니다. 무한 경쟁과 사회가 요구하는 제살 깎아가며 성과 내기 등을 통한 번아웃과 과로로 점철된 현대 사회에 치트와 보정으로 얻은 손쉬운 성공은 달콤해 보였겠죠. 아니 어쩌면 당연해 보였겠죠.
-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결국 타고난 환경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트럭을 통해 재시작을 함으로 해소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