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하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들어가며
미쳐버린 생산성
미쳐버린 AI의 발전으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AI에의해 월급을 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리는 오히려 늘었죠. 저 또한 회사에서 개발하는 시간은 오히려 줄고, 사이드로 뭔가 하는 건 상당히 늘었습니다. 사이드로 안 가더라도 회사에서 하나를 개발하는 시간이 줄고, 다른 걸 더 개발하는 회수가 늘기도 했죠.
생산성의 역설
여기까지만 보면 AI는 단순히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높이는 도구로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산성이 올라가면 마찬가지로 일은 늘어나게 됩니다. 단위 시간 당 할 수 있는 게 늘어났으니 당연한 셈이죠. 그로 인해 많은 분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이제 그 부서의 전체 일을 처리함에 있어, 그만한 인원 수가 필요없게 되었으니까요. 역설적이게도, 업무의 빈익빈 부익부로 인해 생산성이 올라감에도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누군가는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남는 생산성은?
그럼 우리는? 이미 월급을 못 받게 된 사람들은? 회사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은? 미래의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하지? 단적으로 얘기해서 우리가 생산성만으로 AI를 이길 수 있나요? AI보다 가성비가 좋나요? 사실 그런건 아니라고 보이거든요. 지금 당장 저만 해도, 어떤 API나 도구를 개발할 때, AI를 사용하면 진짜 딸깍에 가깝게 빠르게 개발이 됩니다. 그럼 우린 뭘 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AI란 뭘까요?
정신분석학
프로이트의 정신구조론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을 세 가지 구조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Id, Ego, Superego, 이하 이드, 에고, 수퍼에고입니다. 이드는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부분으로,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합니다. 에고는 현실적인 부분으로, 이드의 욕구를 현실에 맞게 조절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수퍼에고는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부분으로,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기준을 내면화한 것입니다.
AI의 정신구조론
다르게 보면, 현재 AI는 수퍼에고에 한없이 가깝습니다. AI는 이유는 모르지만, 확률적으로 가장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답안을 내놓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어떤 문맥에서, 어떤 입력이 들어오든, 아랑곳 하지 않고 가장 보편적으로 이상적인 답안을 내놓으려 합니다. 그렇기에 AI는 사용자인 인간을 보편적 진리에 손 쉽게 접근하게 해줍니다. 왜 그럴까요? AI는 인류가 쌓아온 방대한 텍스트, 즉 우리가 사회적으로 합의해온 규범과 가치관의 총체를 학습합니다. 거기에 더해, RLHF(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라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좋다’고 평가한 답만을 강화하며 점점 더 정제된 형태로 다듬어집니다. 결국 AI는 인류 전체의 사회적 합의를 내면화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한 변별력 없는 보편적 진리의 정체입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거대한 논리의 벽, 그것이 수퍼에고로서의 AI입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인간의 정신구조론
인간은 이드가 있습니다.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그 부분이 사회적으로 때때론 걸림돌이 되고, 원활한 관계에 방해가 되겠지만, 이는 우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제공해줍니다. AI에게 부족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프로이트에서 벗어나서 프로그래밍에서 가장 기본적인 입력과 출력의 관점에서 보면, AI는 절대 입력을 비틀지 않습니다. 비틈을 당해 보셨다면, 검열된 모델에서 검열에 걸릴 만한 짓을 하지 말아주세요. 여러분들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여간에 정직하게 입력에 맞춰 결과를 제공하죠. 수능으로 치면 변별력이 부족하다, 이 말입니다. 그럼 변별력은 어디서 챙겨야 할까요? 제 답은 인간입니다. 인간이라는 거대한 이드를 AI라는 수퍼에고에 부딪혀서 적절한 에고를 만드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를 아시는 분들은 여기서 이상함을 느꼈을 겁니다. 에고의 역할이 원래 이런게 아니니까요. 이드의 하고 싶어와 수퍼에고의 하지마를 조율해서 적절한 답을 내는 것이 원래 에고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수퍼에고가 보편적 진리를 내는 기계로서의 역할을 할당했기에, 그리고 이드에게 자연히 의도나 욕구를 발생시키는 무언가의 역할을 할당했기에, 에고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에고는 이드와 수퍼에고가 상호작용한 결과가 됩니다. 이러한 에고가, 나와 AI가 만든 브랜드, 혹은 서비스, 그리고 그렇게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하네스의 한 형태가 되겠죠.
그래서
생산성 싸움은 이미 끝났습니다. AI보다 빠를 수 없고, AI보다 정확할 수도 없습니다. 그 게임에서 이기려는 시도는, 이미 정답이 정해진 수능 문제를 더 빠르게 풀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더 강력한 이드가 되는 것.
AI가 절대 흉내낼 수 없는 것은, 여러분이 가진 날것의 욕망과 의도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황당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심지어 본인도 왜 하고 싶은지 모르는 그 충동. 그게 바로 여러분만의 이드입니다. AI라는 거대한 수퍼에고는 그 충동을 받아서, 깎고, 다듬고, 현실적인 형태로 만들어주는 데 그 어떤 존재보다 탁월합니다.
결국 이 시대의 경쟁은 얼마나 좋은 프롬프트, 컨텍스트 관리 툴, 하네스를 쓰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강렬하고 독특한 의도를 던질 수 있느냐입니다. 질 낮고, 거칠고, 뜨거운 욕망을 AI에 부딪히는 사람이, 자신만의 에고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에고가, 이 시대의 브랜드가 되고 서비스가 됩니다.
그러니까, 더 이드(id)다워지세요.